기다림의 미학 (창40:1-5)
· 오늘날 현대인들은 항상 움직이며 활동(vita activa)하는 것을 숭배하면서, 머무름과 기다림의 향기를 잃었다. 기다림은 효율성과 즉각성의 강박에서 벗어나, 성찰하며 관조(vita contemplativa) 하는 가운데 삶을 숙성시키는 것이다.(한병철)
· 기다림은 우리의 삶을 다시 정상적인 속도로 되돌리는 것이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섣부른 판단과 나의 욕망을 걸러내고 성숙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주셨던 꿈이 이루어지는 때는 사람이 생각하는 때와 다르다.
·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에 어느 날 갑자기 고위 관리가 두 명 씩이나 잡혀 들어오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요셉은 그들을 열심을 다해 섬겼는데, 그것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무엇인가 하시려는 일이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1,3,4절) *섬기다 (שָׁרַת/shārat ) = 천사들이 충심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는 것
· 두 관리가 꿈을 꾸고서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듣지 못했을 때, 그들이 꾼 꿈을 요셉이 해석을 해준다. 이후 일들은 요셉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이후 2년 동안 계속되었다.(창41:2)
· 헬라어에는 ‘때’ 를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다. ‘크로노스’는 인간들이 정한 때로 초, 분, 시, 날, 해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막1:15) 문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크로노스의 때를 좀처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때를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는 있다.
· 여전히 내 안에 불평과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여전히 자아가 죽어지지 않고 자기 주장과 자기 의가 드러나고 있다면, 여전히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겸손과 온유의 열매들이 내 삶에 나타나고 있다면,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자비와 배려를 나타내고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2)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이미 그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 요셉도 기다리다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을 무렵, 감옥 밖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다.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게 되고, 그 꿈 이야기를 들은 술 관원장이 요셉을 비로서 기억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술 관원장의 추천으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애굽의 총리가 된다.
· 기다리는 것은 단지 참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욕망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만들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은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라, 내 삶이 분노로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판단을 절제 하는 훈련의 시간이다. 감정의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것이며, 결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미래의 가능성과 의미를 향해 자신을 정렬하는 것’ (하이데거)
· 우리 앞에 진행되는 모든 상황은 그것이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초래된 일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분명 하나님의 간섭 아래 일어나는 일임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프레드릭 쉴즈의 ‘인내’라는 그림의 의미
3)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어찌하든지 축복하는 자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 요셉의 이야기의 정점은 그가 기다림의 시간들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욕심과 분노를 다스리게 된 것이요, 하나님의 시각에서 모든 사람들과 상황들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형들을 만났을 때 보여준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자기 고난은 끝까지 참고, 남의 고난은 끝까지 돌봐주라’(락근담)
·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이니 자신을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라고 했다.(창45:5,7,8) 또 요셉은 나중에 아버지 야곱이 죽고 또 다시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형들은 나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이 선을 이루셔서 모두의 생명을 구하게 하셨다 말하며 오히려 위로하고 자식들까지 살피겠다고 한다.(창50:17)
· 어쩌면 오늘도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 아직 기다려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요셉의 모습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은 하나님이 정하시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앞당길 수는 있다. 기다림을 통해 얻게 하시려는 것들을 내 삶 속에서 내가 먼저 실현해 내는 것이다.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미리 나타내는 것이다.
· 기다려야 할 시간에 서둘러 답을 채우려 하면 진짜를 만나기 전에 가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시몬 베이유) 기다림은 견디는 가운데, 성급한 해석을 유보하고, 하나님께서 사건의 전모를 스스로 드러내실 때까지 내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럴 때 기다림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수용의 시간’이 된다. 사람과 상황을 받아들임으로 내 삶에 성숙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학습 및 적용 문제:
1) 기다림의 미학은 무엇인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해보라.
2) 내 삶에서 기다려야 할 때 먼저 서둘러 답을 채우려 하다 낭패를 본 일은 없었는 지, 또 내 삶에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나타났던 일은 없었는 지 나누어보라. 말씀을 듣고 새롭게 결단한 것들을 나누어보자.
기다림의 미학 (창40:1-5)
· 오늘날 현대인들은 항상 움직이며 활동(vita activa)하는 것을 숭배하면서, 머무름과 기다림의 향기를 잃었다. 기다림은 효율성과 즉각성의 강박에서 벗어나, 성찰하며 관조(vita contemplativa) 하는 가운데 삶을 숙성시키는 것이다.(한병철)
· 기다림은 우리의 삶을 다시 정상적인 속도로 되돌리는 것이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섣부른 판단과 나의 욕망을 걸러내고 성숙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주셨던 꿈이 이루어지는 때는 사람이 생각하는 때와 다르다.
·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에 어느 날 갑자기 고위 관리가 두 명 씩이나 잡혀 들어오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요셉은 그들을 열심을 다해 섬겼는데, 그것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무엇인가 하시려는 일이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1,3,4절) *섬기다 (שָׁרַת/shārat ) = 천사들이 충심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는 것
· 두 관리가 꿈을 꾸고서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듣지 못했을 때, 그들이 꾼 꿈을 요셉이 해석을 해준다. 이후 일들은 요셉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이후 2년 동안 계속되었다.(창41:2)
· 헬라어에는 ‘때’ 를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다. ‘크로노스’는 인간들이 정한 때로 초, 분, 시, 날, 해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막1:15) 문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크로노스의 때를 좀처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때를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는 있다.
· 여전히 내 안에 불평과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여전히 자아가 죽어지지 않고 자기 주장과 자기 의가 드러나고 있다면, 여전히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겸손과 온유의 열매들이 내 삶에 나타나고 있다면,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자비와 배려를 나타내고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2)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이미 그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 요셉도 기다리다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을 무렵, 감옥 밖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다.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게 되고, 그 꿈 이야기를 들은 술 관원장이 요셉을 비로서 기억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술 관원장의 추천으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애굽의 총리가 된다.
· 기다리는 것은 단지 참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욕망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만들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은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라, 내 삶이 분노로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판단을 절제 하는 훈련의 시간이다. 감정의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것이며, 결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미래의 가능성과 의미를 향해 자신을 정렬하는 것’ (하이데거)
· 우리 앞에 진행되는 모든 상황은 그것이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초래된 일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분명 하나님의 간섭 아래 일어나는 일임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프레드릭 쉴즈의 ‘인내’라는 그림의 의미
3)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어찌하든지 축복하는 자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 요셉의 이야기의 정점은 그가 기다림의 시간들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욕심과 분노를 다스리게 된 것이요, 하나님의 시각에서 모든 사람들과 상황들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형들을 만났을 때 보여준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자기 고난은 끝까지 참고, 남의 고난은 끝까지 돌봐주라’(락근담)
·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이니 자신을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라고 했다.(창45:5,7,8) 또 요셉은 나중에 아버지 야곱이 죽고 또 다시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형들은 나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이 선을 이루셔서 모두의 생명을 구하게 하셨다 말하며 오히려 위로하고 자식들까지 살피겠다고 한다.(창50:17)
· 어쩌면 오늘도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 아직 기다려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요셉의 모습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은 하나님이 정하시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앞당길 수는 있다. 기다림을 통해 얻게 하시려는 것들을 내 삶 속에서 내가 먼저 실현해 내는 것이다.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미리 나타내는 것이다.
· 기다려야 할 시간에 서둘러 답을 채우려 하면 진짜를 만나기 전에 가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시몬 베이유) 기다림은 견디는 가운데, 성급한 해석을 유보하고, 하나님께서 사건의 전모를 스스로 드러내실 때까지 내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럴 때 기다림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수용의 시간’이 된다. 사람과 상황을 받아들임으로 내 삶에 성숙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학습 및 적용 문제:
1) 기다림의 미학은 무엇인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해보라.
2) 내 삶에서 기다려야 할 때 먼저 서둘러 답을 채우려 하다 낭패를 본 일은 없었는 지, 또 내 삶에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나타났던 일은 없었는 지 나누어보라. 말씀을 듣고 새롭게 결단한 것들을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