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짓는 자

posted Nov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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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4년 11월 10일
성경 로마서 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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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짓는 자 (롬6:12-18)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이미 교회에 다녀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교회 안에 성숙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안타까운 교회들의 모습 때문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다. 

*마지막 때 한국와 한인 디아스포라를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적 계획

·보혈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 우리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은혜를 입은 자로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1) 우리는 이전에는 죄의 종이었다가 지금은 의의 종이 된 자들이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된 것이다.(17,18절)      *예수님과 용접(?)된 자들 

·우리의 옛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는 죽어 있어서 본질적으로 죄에게 종노릇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죄 지을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바람에 밀려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돗닷배 처럼 죄에 이끌려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에는 평안과 생명이 아니라 고통과 영원한 멸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죄씨 집안 사람들이었다가 의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것이다. 

·우리가 의씨 집안의 사람이 된 것은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죄의 종에서 해방되도록 속전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예수님의 피값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고대의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된 속전(헥사고라센)

 

2-1) 의의 종으로 사는 것은 가장 먼저 우리의 지체를 불의에 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완전하게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굳게 믿는 다면 우리의 삶은 바뀌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지체를 죄에게 드리지 않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할 하심은 그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우리를 죄의 유혹으로 부터 구출하시기 위한 것이다.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어요.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그렇게 안되요.’라는 말은 이전 죄의 종으로 살 때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죄의 종에서 해방된 우리들에게는 더 이상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죄 가운데 다시 살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죄에게 우리의 몸을 맡기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길 수 있는 데도 스스로 그 죄의 유혹에 이끌림 받는 것이다. 말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달콤한 죄의 유혹에 스스로를 맡기고 있는 것이다.(13절; 약1:13-16)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이나 도박 중독 등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그 죄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예수의 피를 의지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 다만 그것을 내가 선포해야 한다. 그 죄를 향하여 명령하고 선포해야 한다. 너는 결코 나를 다시 어둠으로 끌고 갈 수 없다고 선포해야 한다. 

*담배를 양말에 숨기고 철야기도를 참석했던 성도

 

2-2) 의의 종들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의를 짓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삶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삶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오히려 의를 짓는 자로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다.(엡4:28)     *아이가 셋 이상인 사람들은 미치지 않는다는 정신과 의사 이야기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말한다. 의의 종이란 바로 그 하나님의 의를 함께 이루어가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을 성경은 ‘순종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의를 짓는 일이 순종을 통해서 되는 것을 말한다.(16절)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순종이란 철저히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심을 믿을 때 가능하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선지자들과 영적 대결에서 승리함으로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그가 그런 역사를 이루어낸 것은 작은 순종으로 부터 시작된다. 먹고 살기 막막할 것 같은 그릿 시냇가에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는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이후 사르밧으로 가라는 명령에도 순종한다. 그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곧 죽으려고 하는 과부에게 자신을 위해 상을 차리라 한다.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이미 그릿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 지를 경험한 엘리야는 그 말을 전한다. 그리고 말씀대로 먹을 양식이 끊이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작은 순종을 원하시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시려는 일들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일단 순종해보시기 바란다. 그 순종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더 큰 순종을 하게 할 것이고, 마침내 그렇게 의를 짓고 있는, 순종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일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최근 휄로쉽 교회에 나타나는 현상과 영적 각성의 필요

 

학습 및 적용 문제:

1)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에게 어떤 은혜가 주어져 있다고 하는가?(17,18절)

2) 소극적인 의미에서 의의 종으로 사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말해보라.

3) 보다 적극적으로 의의 종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말해보라.

4)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내가 의의 종으로 살도록 어떤 부분을 말씀하셨는 지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