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6)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요19:17-20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후한 1주간 기록이 전체의 1/3에 해당된다. 아무리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도 그 전기를 보면 죽음에 관한 기록이 1/10도 채 안되는데 예수님의 경우 십자가의 죽으시는 과정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말한다.
1)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대부분을 생략할 정도로 짧은 사도 신경에 굳이 '본디오 빌라도'라는 긴 이름을 기록한 이유는 십자가 사건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이스라엘 총독
·또한 예수님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죽으셨던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는 것이다.(20절) 마침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오는 지방이나 타국의 순례객들, 왕래하는 예루살렘 시민들의 눈에 많이 띄였을 것이다.
*골고다 언덕은 성문 밖 대로변
·예수님의 죄 패가 3개 언어(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로 쓰여져 누구나 다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분명한 역사적 사건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2)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으심은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날 때부터 죄악된 본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순간 순간 죄악된 생각을 품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행동들을 한다.(렘17:9) 그리고 인간들은 그렇게 죄악된 삶을 살다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후에는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인간의 비참한 운명을 바꾸고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오래 전에 이것을 예언해 놓았다.(사53:5,6) *갈보리 언덕이 ‘해골의 곳’이라 불렸던 이유
·그러나 예수님이 아무리 인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어도, 또 아무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일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만다.(요3:14-16)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서 부요하게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다. 하루에만 170만 명이 죽는다는데 죽어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믿고 구원 얻는 일이다.
*렘브란트 그림 속 어두운 그늘 속에 한 사람(찬147장)
3) 십자가 은혜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피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 마치 고대 사회에서 주인이 종을 사기 위해서는 속전을 지불해야 했던 것과 같다. 그러니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부요하심이 외적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요하심 중에 가장 큰 부요하심은 바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는 새 창조의 은혜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한다는 것은 나를 통해 그 일들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나의 말하는 것을 듣고, 나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나 때문에 하나님께 그 영혼이 돌이켜 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이 가장 복된 발걸음이다.(롬10:14,15,17) 오이코스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힘을 합쳐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들려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워싱턴 지역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역자의 초청
·또한 우리가 입술로 전하는 복음으로만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이유는 삶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때가 많다.(마5:14-16)
·안타깝게도 착한 행실 가운데 살아가는 가운데도 우리에게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게 된다. 사탄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알기에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좌절시키는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게 하고,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착한 행실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어려움을 당하고 있어도 묵묵히 그 어려움을 감당하고 있을 때, 그런 우리들의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감동하며 예수를 찾게 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심으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오늘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으로 인해 누군가의 영혼이 건져지게 될 것을 말한다.(골1:24)
·오늘도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 심지어 억울하고 속상한 상황들이 바로 십자가의 남은 고난일 수 있다. 나만 억울하게 지고 가는 십자가가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이 지게 하신 십자가의 남은 고난인 것이다.
*히스패닉 홈리스들을 섬기는 굿스푼이 겪는 고난
·자신이 지는 십자가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이 영광이 나타날 일을 생각하면서 기꺼이 십자가를 참고, 부끄러움까지 참아내셨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히12:2,3) 나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를 힘쓰되, 입술로만 아니라 기꺼이 손해 보고, 기꺼이 희생하며, 기꺼이 자존심도 꺽을 수 있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학습 및 적용 문제:
1)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오늘 나와 관련이 있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2) 십자가의 은혜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보라.
3)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인지 두 가지를 말해보고, 이와 관련하여 오이코스 차원에서, 혹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