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탕자 (Two Prodigal Sons)
눅15:11-22
·‘탕자의 비유’는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며, 또 돌아온 아들을 기쁘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탕자의 비유’는 탕자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비유라고도 할 수 있다.
1) 둘째 아들이 탕자인 이유는 아버지를 떠나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국은 결핍의 삶일 뿐이다.(13절)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아직 숟가락 놓을(?) 상황도 아닌데, 아버지 한테 상속받을 재산을 미리 달라하고, 재산을 분할 받은 몇 일만에 그 재산을 임의대로 처리해서 먼 나라로 떠난다.(13절)
·둘째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났다는 것은 그가 평소에도 얼마나 아버지의 간섭을 받기 싫어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싶어 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섭과 도움이 없게 되자 둘째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허랑방탕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돈을 벌기는 커녕 재산 다 날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종살이를 하게 된다.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인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제한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살다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게 되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인데 그 결과는 사망이라고 한다.(롬6:23) 이것은 뿌리가 뽑힌 나무가 자신의 한계적인 양분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살아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결국은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시90:10)
·하나님을 떠나 살면 육적인 궁핍 가운데 처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 육적인 궁핍은 없을지라도 영적인 궁핍 가운데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 미움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2) 영육간의 결핍의 삶을 통해서라도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17절)
·둘째 아들은 궁핍한 삶을 살게 되면서야 아버지를 떠난 삶을 한계를 깨닫는다.(17절) ‘스스로 돌이켜’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면 ‘본래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는 뜻이다. 이것은 회개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근심 거리를 주시는 이유도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삶의 한계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려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 후에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되고, 더욱 사모하게 되고, 더욱 열심을 내게 된다.(고후7:10,11) *사경을 헤메다가 하나님께로 돌이킨 이야기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이킨 것은 아버지의 집이었다.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은 자신의 교만과 허랑방탕한 삶에 대한 회개의 길이며, 이제는 자신의 삶을 아버지의 사랑과 이끄심 가운데 전적으로 맡기고자 하는 삶이었다.(18,19절)
3)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돌아온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20,22절)
·둘째 아들이 설레임과 두려움을 갖고 마을입구에 도착했을 때 마을 입구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언제고 돌아오리라는 마음으로 매일 아들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보자말자 한 걸음에 달려와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달려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달려 왔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 다 말아먹고 거지 행색으로 돌아온 아들이 더럽게 여겨지거나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아들이 미워 죽겠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안쓰러웠고 사랑스러웠다.(20절)
·또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게 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22절) 아들에게 제공한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발은 아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는 의미보다는 둘째 아들을 여전히 존귀하게 여기고 아들로서 대우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때로 아버지의 간섭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우리 마음대로 인생을 살다가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다시 아버지 앞에 나아올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의 지난 날의 연약한 모습을, 이렇게 면목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주신다. *어느 창녀의 고백
·우리의 악한 모습은 생각지 않으시고 그저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거지 행색으로 돌아온 우리들의 목을 껴안아 맞아주신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4) 첫째 아들도 탕자인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첫째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타이르고 기다리시는 동일한 사랑을 보였다.(31,32절)
·첫째 아들은 둘째 아들이 아버지 재산 미리 챙겨 나가서 다 말아 먹었을 때도 아버지 집에 남아 열심히 산 아들이었다. 큰 아들은 잔치가 벌어진 것을 보고, 자신에게는 염소새끼도 안주었으면서 재산 다 말아먹은 아들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주느냐고 아버지에게 따진다.(29,30절)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따라 사는 것 같았지만 정작 그는 아버지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돌아온 둘째 아들이 기쁘고 반가운 것이 아니라 시기 나고 미운 것이었다.(30,31절)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한 것이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으니 평소에 잘 지낼 수 있었지만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남으로 불쌍한 처지에 놓였었다. 아버지는 그 불쌍한 동생을 긍휼히 여긴 것이다.
·또한 첫째 아들은 이미 아버지 재산의 3/2를 상속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이미 받은 축복을 생각하면 사실 살진 송아지 한 마리 먹지 못함을 원통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이런 첫째 아들의 모습들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다. 뭔가 제대로 사는 것 같지만, 아버지 집에 머물고는 있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탕자인 것이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들의 연약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들을 시기하고 미워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집 나간 아들들이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면 이것 역시 또 다른 탕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첫째 아들의 모습도 긍휼히 여기신다. 기다려주신다. 하나님은 지체의 연약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는 우리의 연약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기다려주신다. 마치 그런 첫째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는 아버지와 같다.(28절)
학습 및 적용 문제:
1) 두 아들 모두가 탕자인 이유가 무엇인지 각각 말해보고, 두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설명해보라.(13절, 31절; 롬6:23; 고후7:10; 롬5:8; 히13:8)
2) 나는 둘째 아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 지, 또 첫째 아들과 같은 모습은 없는 지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