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의료선교를 하는 한 의사가 있었다. 한 번은 귀가 잘 안 들리는 아이가 진찰을 받으러 왔다. 이 의사는 자기 전공은 아니지만 대충 보아도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귀가 안 들린다고 하니 막막했다. 결국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자기 아내에게 그 아이를 들여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와 아내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오면서 말하기를 귀가 들린다고 했단다. 이 선교사는 자기 전공이 이비인후과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몰라서 그렇지 그 아이는 원래부터 귀가 들렸던 아이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 의사 선교사의 불신앙을 보시고 30분 후에 똑같은 증상을 가진 아이를 보내주셨다고 한다. 똑같이 아내가 기도하고 나오더니 또 들린다고 하더란다.
기적이 너무 자주 나타나면 기적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기적같은 일들을 자주 보여주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오늘 이 시대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적이 목사나 선교사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적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에게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적은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아무에게나 나타내 주시지는 않는다. 행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고치게 된 사건이 나온다. 그들이 앉은뱅이를 고치게 된 것은 제 구시 기도하는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였다. 당시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제 삼시와 육시와 구시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오전 9시, 정오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약5:17에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한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엘리야도 베드로도 요한도 기적적인 역사를 경험한 것이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려거든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역사를 나타내셔도 그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뻐하지만 결국 그 일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사람은 기도하던 일들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기적 같은 역사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사의 마음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게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사를 나타내주신다.
실제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기도하지 않고 있을 수 없다. 마르틴 루터가 유명한 말을 했다. ‘나는 바쁠 수록 기도한다. 내가 바빠졌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일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바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고, 피곤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는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 3월 9일